Page 169 - 김해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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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버지와 형이 두 사람을 핍박하기 시작했다. 온 동네 사람들도 손가락질을 했다. 그
러나 그 두 사람은 꿋꿋한 신앙으로 이겨나가 결국 모든 가족을 예수께로 인도했고 마을도
차츰 복음화되기 시작했다.
8.15해방 후 청도군청 회계과에 잠시 근무한 적도 있으나 목회자의 꿈을 품고 고려신학
교에 진학했다. 그는 신학교 시절 삼랑진중앙교회를 개척하여 2년간 첫 번째 사역을 하였
다. 신학교를 졸업 후에는 함양개평교회를 3년간 목회하는 동안 그에게서 세례를 받고 성
장한 젊은이 가운데 유명한 신학자가 두 사람 나왔다. 허순길, 김병원 목사가 바로 그들이
다. 그들은 당시 함양중·고교에 재학하던 학생이었다. 두 사람은 1년 선후배 사이로 학교
에서 소문난 우등생들이었다. 박목사는 이들에게 신학을 공부해서 훌륭한 목회자가 되어
줄 것을 적극 권했다. 그들은 평소 박목사의 신앙과 인격에 감화를 받고 있었으므로 그의
권유를 순종하며 받아들였다. 그들은 고려신학교를 졸업하고 각기 네덜란드와 미국에서 계
속 공부하여 신학과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 2월 초 허순길 목사가 고려신학대학원 원장에, 김병원 목사가 고신대 총장에 취
임하였는데, 역시 개평교회 출신으로 당시 고신교단 총회장을 맡았던 정순행 목사까지 함께
일컬어 “함양 산중 개평마을의 인물들이 큰 일을 맡았다”고 교계에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1954년 9월 개평교회를 떠나 안의교회에서 6년, 1960년 김해중앙교회에서 9년, 1969
년 연지교회에 부임하여 1985년 정년 은퇴까지 마지막 목회를 했다. 1984년 9월 총회에
서 총회장의 중책을 맡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박태수 목사 위임식(앞줄에서 오른쪽 여섯 번째가 박태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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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온 50년의 발자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