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6 - 김해중앙교회
P. 166
김주오 목사는 “만약 이성옥 목사가 시간을 어긴다며 이 세상은 다된 것이다.”라고 말하기
도 하였다.
그는 철저한 준비생활을 하였다. 매사에 철저히 점검하고 두 번 세 번 확인하여 일에 차
질이 없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준비위원회를 개최하면 각자 맡은 일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
야 하는지를 일일이 질문하여 대답하게 하고 적당히 넘어 갈 수 없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기도생활을 강조하였다. 크고 작은 모든 일은 기도 만능의 원리를 강조하여
매사를 기도로 준비하고 기도로 성취시켰으므로 새벽기도, 저녁기도, 산기도, 금식기도 등
기도생활을 많이 강조하였다. 주교교사와 찬양대원들은 맡은 일을 기도로 준비하여 충성할
수 있도록 주일 새벽만이라도 새벽기도회에 나와야지 불참자는 그날 맡은 봉사를 못하게
하였다. 매주 금요일 아침 10시가 되면 권찰 기도회를 가져 문제 가정이나, 시험에 든 가
정을 점검하여 기도하고 심방하는 일로 양떼를 돌보며 구역관리에 힘썼다.
기도에 관한 일화 중에 ‘소낙비의 기적’
이 있다. 1950년대 어느 해 교회당 헌당
식을 앞두고 온 나라가 무더위로 목말라
하고 있을 때, 헌당식 당일은 우리 주님이
시원한 날씨를 주실 것이니 온 성도들은
열심히 기도하라고 하였는데 당일 낮 12
시가 되자 갑자기 먹구름이 뒤덮고 비바람
이 불어 교회 주변의 대로가 온통 강바닥
제1 예배당 헌당식(54.8.12)과 하기 아동성경학교 개교
이 되어 온 성도들은 놀랍고 시원한 기적 (이성옥 목사와 박금란 여전도사)
을 체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성옥 목사는 평소에 어디를 가나 잠깐 동안이라도 기도하는 습관을 잊지 않았고 매일
밤 10시가 되면 으레 교회당에서 꿇어앉아 밤을 세우며 기도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
의 발등에는 또 다른 한 개의 복숭씨가 굵게 못 박혀 있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철저한 십일조 생활을 하였다. 십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니 반드시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고 가르치며 자신이 먼저 각종 수입의 십일조 생활을 철저히 하였다. 특히, 성
탄 및 각종 명절이나 행사 때 받은 선물이나 대접받은 것은 십의 이조를 드리곤 했으며,
심지어는 양말, 손수건까지도 빠짐없이 십일조 장부에 기재하면서까지 십일조 생활에 철저
하였다.
또한 영성 찬양강화에 중점을 두었다. 젊은 시절부터 피스톤 악기, 리듬 악기 및 피아노
까지 연주할 수 있어 일제시대 첫 목회지인 함양교회에선 Brass Band를 조직하여 일
제의 핍박 중에서도 전도에 열을 올렸으니 그때 인물 중에서 우리 교계의 민영완, 조
문봉 그리고 그 후손에서 박종수 목사 같은 분들이 배출되기도 하였다. 그는 특별한
관심으로 찬양대의 질적 향상에도 힘을 기울여 20명 내외의 찬양대원으로 메시아 발
췌곡까지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소도시로서는 대단한 일이었다. 찬양대의 눈부
166 김해중앙교회 70년사(은혜와 축복으로 달려온 7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