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7 - 김해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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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활동이  자라는  세대들에게까지  좋은  영향을  미쳐  그  당시  많은  청소년들이  음대로
                진학하여,  김방자(연세대  음대),  이정식(계명대  작곡,  현재  서울신학교  설립  이사장),  이은
                자(계명대  Violin),  김인수(부산사범대  음악과)  등이  배출되었다.




                3.  엄한  시벌

                  이  당시에는  불신결혼이나  주일을  잘  지키지  않는  것에도  엄격한  시벌을  하였다.  이는
                바른 신앙노선을 위해 교회를 세운 우리 교회의 정체성을 드러낸 것일 뿐 아니라 MP란 별
                칭을  가진  이성옥  목사의  엄격한  목회  방침에  의한  것이기도  하였다.
                  1952년 2월 10일 주일에는 조기옥씨와 정대성씨의 불신결혼에 대해 시벌했으며, 1956
                년  5월  30일  임시제직회에서는  교우  중  불신혼인  등에  신자로서  태도를  명확히  할  것을
                결의하였고,  1956년  5월  16일  제직회에서는  정영애씨의  비신앙적  태도를  최종적으로  권
                유하고 불응할 시에는 제명토록 결의하였으며, 1956년 6월 10일 밤예배 시에 주용순 씨,
                박필순  씨와  그  자녀들의  불법혼인에  대하여  시벌을  공포하였다.  1957년  11월  3일  박재
                복씨가 낙심하여 주일을 범하므로 목사님이 다시 한 번 권면하고 불응할 시에는 제명토록
                했으며, 1958년 11월 2일에는 K양이 7계를 범했으므로 공개 시벌토록 하였다. 김수봉 집
                사가 박태선 전도관(천부교)으로 넘어가는 일이 있어 성도들이 이단에 유혹되지 않도록 성
                경을 잘 연구하고, 상대편의 여하한 질문에도 성경을 중심으로 답변할 수 있도록 성경읽기
                를  독려하였다.



                4.  부활절  새벽송

                  1956년  부활절에는  계란을  수집하여  공병학교  의무대에  보냈으며,  새벽  찬양대를  2대
                로 나누어 부활절 새벽송을 하였다. 6월 첫 주에 세례와 성찬식을 거행하였다. 9월 9일에
                는  사택을  구입하도록  했으며  사택구입  추진책임자로  신봉도,  김강환  집사를  임명하였다.
                성탄쌀은 구역별(10개 구역)로 총 80되를 거출하여 만든 쇠고기 국밥으로 전 교우들이 애
                찬을  나누었으며,  성탄  전야에는  주일학교와  학신회  공동주최로  성탄  축하회를  열었다.




                5.  고려신학교를  위한  헌금

                  1955년  1월부터  1956년  12월  30일까지  (2년간)  고려신학교를  위한  헌금을  하였는데
                매주일  헌금에서  십일조를  떼어서  헌금하였다.  이는  목회자를  배출하는  신학교를  정성껏
                지원함은  물론  바른  신앙파수를  위한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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