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1 - 김해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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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2월 4일 오후 12시 30분에 전성도 목사 사회로 장로 선출을 위한 공동의회를
                열고 총 56명이 투표하여 김수봉, 신봉도, 장지순 집사가 피택되고 그중 장지순 피택 장로
                가  갑자기  별세하여  1950년  1월  8일  오후  1시에  장로  보선투표를  실시하여  136명이  투
                표하여 김강환 집사를 선출하였다.           23)  그러나 교회 분규로 인해 임직식은 이루어지지 않았
                다. 또한 집사에 장의상, 이인수, 임이도, 오동환, 구상업, 이태상, 김금순, 박음전, 강소수,
                정말임,  안복개  등  11명을  선출하였다.
                  1950년 전성도 목사가 이임하고 민영완 목사가 부임하였다. 이때 갈라져 나갔던 교인대
                표들이 와서 고려파 교인들이 예배할 때 조금도 방해하지 않을 터이니 교회에서 같이 예배
                하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하여도 거절했다. 그 후 계속된 사정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싶
                어  양쪽의  예배시간을  정하고  합하였으나  예배  방해와  분쟁이  계속되었다.
                                          그해  가을에  한상동  목사가  “모든  것을  주어버리고  나오라”
                                        고 권고하여  민영완 목사와 유년,  청년, 장년이 합하여  120여
                                        명(교인  대부분이  피난민이었음)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빈손으로  나와  서상동  2층집을  얻어  ‘김해읍중앙교회’를  설립
                                        하였다. 민영완 목사를 비롯한 신봉도, 김강환, 신경호, 장의상
                                        남자  집사들과  이태상,  구상업,  박음전,  강소수,  정말임  여자
                                        집사  등  120명이  김해중앙교회의  초대  성도들이었다.
                                          그들은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주실 땅을 바라보
                박금란  여전도사               며  개척의  첫걸음을  내딛게  된다.
                개척  당시  무보수로
                민영완  목사와  동역하였다.          1952년  6월  16일,  김해읍  서상동  82-28번지의  대지에  47
                                        평의 목조건물 예배당을 건축하였고 1954년 8월 12일에 헌당
                하였다.
                  1953년 10월 4일에 민영완 목사가 이임한 후, 약 4개월간 신봉도, 김강환, 장의상 집사
                가 후임 목회자가 부임할 때까지 협력하여 교회를 이끌어나갔다. 초대 성도로서 특히 사랑
                의 수고를 많이 한 사람들은 신봉도, 김강환, 장의상, 구상업 집사 외에도 신경호(삼선교회
                장로),  홍승복(영락교회  권사),  박금란(부산  대신동교회  전도사),  이인영(신촌감리교회  권
                사)  등이다.
                  피난  와서  우리  교회에  출석하던  이인영(李仁榮)  집사  형제가  서울로  돌아가면서  환도
                (還都) 감사헌금 1,000환을 하였다. 이날 주일예배 참석 108명의 성도가 헌금한 것이 804
                환임을  감안할  때  1,000환은  큰  헌금이었다.  그런데  이인영  집사는  예배시간에  한  번도
                대표기도를 한 일이 없는 것으로 보아 당시 교회에서 중책을 맡지 않았지만 이 두 형제의
                교회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23)   50년사  159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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