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9 - 김해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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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중앙교회의 개척은 예수 믿는 사람이 많지 않던 김해 사회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그
것은 불신자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보여준 역사(役事)였다. 한 사건이 이를 생생히 증
언하고 있다. 당시 김해 읍내는 물론 군내에는 여성을 위한 교사(校舍)가 없어 해방 직후부
터 김해여중·고교를 세우기 위해 건축기성회가 조직되어 있었다. 그 임원들이 중앙청, 문
교부에 드나들며 노력했어도 돈만 쓰고 7년이 넘도록 건축은 고사하고 학교 인가도 못 받
고 있었다. 군수가 한번은 그들을 소집하여 우리 교인들이 빈손 들고 나와 1년 만에 예배
당을 짓는 것을 지적하면서 뭘 하고 있느냐고 자극적인 충고를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둘러 일을 하여 결국 그 여자학교를 건립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한창 건축공사를 해 나가는데 목수가 경험이 부족했던지 종각 위에 얹을 갈모와 그 위
에 세울 십자가까지 만들었으나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종각 위에 올릴 수가 없었다. 해체
해서 다시 하자니 일도 많고 또 페인트까지 칠해 놓은 판이라 손해도 많을 것 같아 기가 막혔
다. 마침 공병학교 군목이 지나가다가 예배당 짓느라고 고생이 많다며 인사하러 들렀다가 이
광경을 보았다. 당장 하는 말이 ‘목사님, 걱정 마십시오’ 하더니, 자기 부대로 돌아가 부대장과
의논하여 기중기 한 대를 동원하여 왔다. 동네사람, 아이들 할 것 없이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어
구경하는 가운데, 기중기가 종각 갈모를 로프에 매달아 공중 높이 들어 올리더니 종각 위에 안
치시켰다. 모두 환호성을 올렸다.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했다. 이렇게 기쁘고 감사한 중에서도
고생 또한 말할 수 없이 심했다. 없어서 울고, 수모, 비난, 욕설도 번번이 받았다. 그런 중에서
도 많은 사람들이 칭찬, 격려, 동정을 주어 큰 위로를 받기도 하였다. 교인들은 계속 모여들고
은혜와 사랑이 넘치니 마치 초대 교회 같았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때를 따라 도와주심을 체
험하는 사건이었다.” 21)
5. 의자 문제로 사임하다
민영완 목사는 의자 문제로 교회를 떠나기를 결심했다. 다음은 그의 증언이다.
“이 당시만 해도 시골 교회 특히 우리 교단의 교회에는 의자 없이 마루바닥에 앉아 예배
를 드렸다. 피난 왔던 이민우 집사가 교회 마루를 놓는 데 보태라고 일금 20만 환을 헌금
해 주었다. 그러나 그 돈으로는 마루를 놓을 수가 없어 그 액수만큼 의자를 놓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 문제를 제직회에 내어놓고 의논하니 모두가 찬성을 했으나 한두 분이 반대를
했다. 그 이유는 어떻게 감히 의자에 앉아 예배를 드리며 기도를 하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은 반대를 하나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
고 근처 공병학교 군인들이 교회에 많이 오는데 군화를 신고 오는지라 마루보다 의자가 낫
겠다 싶었고 또 교회가 시가지 한가운데라 신을 신은 채로 교회에 들어오면 여러 가지로
편리하겠다 싶어 의자제작을 강행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말썽이 되어 교회 안에 시험
21) 50년사 157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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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온 50년의 발자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