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4 - 김해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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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 김해시 전경(중앙에 보이는 고딕건물이 우리 교회 제2 예배당이다)
우리나라는 제4차 중동전쟁으로 유류 파동을 겪기는 하였으나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2-1976)과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1977-1981)이 수립되어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하였으며, 경제는 크게 부흥하였다.
또한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과 남북적십자회담이 열려 남북관계가 호전되는가 싶더
니 휴전선에 땅굴이 발견되고 판문점에서 북한군이 도끼 만행사건을 일으켜 평화는 아직도
요원함을 보여주었다.
교계적으로는 73년에 「빌리그래함 한국 전도대회」가 서울 여의도에서 개최되어 36,000
명의 결신자를 얻었으며, 이듬해 8월에 「엑스폴로 74 복음화 대성회」가 서울 여의도에서
열려 한국 교회는 대형집회를 통한 대부흥기를 맞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인 대변화의 시기요, 교계적으로 대부흥의 시기에 박유생 목사가 부산 연
지교회에서 46세에 우리 교회에 부임하였다. 그의 목회철학은 전도를 통한 교회부흥이었
다. “복음전파 일념”의 목회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당시의 시대상황에 부합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는 부임하여 주보를 발행하고, 당회를 조직하고, 서상동에 제2 예배당을 건축하여 내
적 준비를 갖추었으며, 73년부터 지칠 줄 모르는 전도운동을 전개하였다. 즉 73년 「김해
읍 완전 복음화 운동」 75년 「전군 신자화 운동」 77년 「경상남도 복음화 운동」이 그것이
다. 이러한 강력한 전도운동을 통해 우리 교회는 양적 성장의 부흥기를 맞게 되었다.
174 김해중앙교회 70년사(은혜와 축복으로 달려온 7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