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8 - 김해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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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에서 이사를 선출하였으나 문교부의 법정기일이 남았다는 이유로 총회의 결의에 순종하
지 않으므로 총회가 이사를 전면 개편하게 되었다. 재단분규로 말미암아 송상석 목사는 민
사, 형사 소송을 당하였고 1974년 12월 3일에는 총회특별재판국에서 송상석 목사를 면직
시켰다. 송상석 목사가 면직을 당하자 1975년 10월에 경남노회는 총회에 행정을 보류하였
다. 1975년 10월 고려파 경기노회는 소위 「반고소파」 경기노회를 조직하였고, 1976년 1
월 31일에는 전 고려신학교의 전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하면서 고려신학교 복교선언문을 발
표하였다. 반고소 고려파는 1976년 9월에 따로 총회를 갖게 되고, 한상동 목사를 중심한
고려파는 고려신학대학을 중심으로 하여 미국과 화란의 개혁주의 교단과 유대를 맺으며 성
장하고 있고, 이탈한 반고소파는 서울 고려신학교 운영주도권을 두고 또 다시 분열하는 쓰
라림을 겪었다. 1976년에 복구 선언한 반고소파의 고려신학교는 송상석 목사를 중심한 경
남노회측과 서울의 석원태 목사 측 알력으로 1977년에 각각 다른 곳에서 총회를 회집하여
같은 이름의 두 교단이 생기게 되었다. 이 재단분규로 인한 고려파 교단의 분열은 신사참
배 거부의 진리수호를 바탕으로 형성된 교단이 진리문제가 아닌 재단문제로 분열한 것이어
서 고려파 운동의 오점이 아닐 수 없었다. 15)
그러나 2000년 4월 11일에 고신측과 석원태 목사 측이 빠진 고려 측은 합동위원회가
모여 운영위원회의 결의와 위임을 받아 고려 측 59교회와 목사 73명, 장로 50명, 선교사
5명, 강도사와 신학생 20명을 영입하는 부분통합을 이루었다. 고려교단의 실직적 지도자
로 고려교단을 창립했던 석원태 목사(경향교회) 측은 합류를 거부하여 완전 합동으로 이어
지기는 어려웠으나 고신 측으로서는 20여년 전 주도권 싸움 끝에 이탈했던 고려 측의 일
부 목회자들이 돌아옴에 따라 수도권에서의 교단의 위상이 다소 강화될 수 있었다.
8. 오늘의 고신 교단
고신교단은 칼빈의 5대 교리를 믿고 개혁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웨스트민스터 표준서를
따르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로 2020년 현재 전국에 35개 노회, 2110개 교회,
세례교인 278,441명, 목사 3,867명, 장로 4,119명이 소속된 교단이다.
총회조직으로는 본부(행정법규부, 신학교육부, 전도선교부, 재정복지부), 유지재단, 은
급재단, 고신총회세계선교회, 교육원, 이단대책연구소, 학생신앙운동(SFC)본부, 출판국,
전국주일학교연합회, 고신언론사 등이 있으며, 고신언론사는 기독교보(주간), 고신생명나
무(월간)를 기관지로 발행하고 고신뉴스닷컴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법인은 고려신학대학원(천안), 고신대, 고신대복음병원 등의 기관을 통해 교역자
양성 및 교육과 의료를 통한 선교와 사회봉사의 책임을 감당하고 있다.
부산, 경남 중심의 지역성을 탈피하기 위하여 신학대학원을 천안으로 이전한 후 전국
15) 50년사 139페이지 참조
148 김해중앙교회 70년사(은혜와 축복으로 달려온 7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