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9 - 김해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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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다. 류영화(3년, 가락교회), 백순옥(2년, 대저제일교회), 이화영(1년, 대저제일교회), 문은
미(1년, 대저제일교회), 김영혜(1년, 활천중앙교회), 박명순(1년, 조눌교회). 그 이튿날 모
학부형이 배우는 학생들이니 학교장에게 제적처리를 재고해 줄 것을 간청했으나 거절당했
으며, 3일 뒤 김해지방기독교계 지도자들이 학교장에게 처벌을 취소해 달라고 간청하기도
하였으나 학교 당국은 이미 전교생에게 공고했고, 언론에 보도되었으므로 재고할 수 없다
고 거절하였다.
제적학생이 소속된 김해시찰(지금 김해노회는 당시 부산노회에 소속된 김해시찰이었음)
과 부산노회와 고신 총회는 사건의 중대함을 인식하고, 총회차원에서 이 사건 수습을 위해
특별처리위원회가 구성되어, 부산지방법원에 제적무효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얼마 후 법
원의 판결은 ‘원인이 부당하다’라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그 후 제적생들의 소식을 전해들은 브니엘고등학교에서는 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박탈
해서는 안 된다 하여, 사건 발생 3개월째 되던 그 해 12월에 입학을 허락해 주어서 그 학
교에 다니게 되었다.
고신총회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두 가지 문제로 열띤 논쟁이 있었다. 첫째 국기 경례가
십계명 중 제2계명에 위배되는 행위 여부, 둘째 제적학생들의 장래 학업문제 등의 방향으
로 논의가 되었다. 결국 첫 번째 문제의 해답은 ‘각자 개인의 신앙양심에 맡긴다’는 애매모
호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두 번째로 제적학생들의 복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각계각층에 호소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경상남도 교육감과 문교부 장관을 만나기로 했지만 면회를 거절당했고,
정치계 쪽으로는 최해일 목사가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 육영수 여사를 만나서 복학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는데, “학생들이 국기경례를 거부할 자유가 있듯이, 학교장은 교사의 지도
에 불응하는 학생들을 퇴학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지 않겠는가”라는 답변을 들었으며, 5일
뒤에 그는 저격을 당했다. 교장 윤대화 씨는 사건 마무리가 되기도 전에 사망하였다.
또 법적으로는 이 사건을 대구고등법원에 김해여고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기로 하
고, 남영환 목사가 위원장을, 변호사는 김광일 씨를 선임했다. 고신 교단의 이 같은 결정이
내려지자 김해여고에서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현재 학적 없는 학생으로 브니엘고
등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비공식 루트를 통해 알려왔다. 그
러나 고신 총회는 결정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 후 김해여고에서는 전학서류도 갖추
지 않은 학적 없는 학생을 받아서 공부시키는 것은 불법이라며 브니엘고등학교를 상대로
이의를 제기하였다. 고등법원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두한 브니엘고등학교 교장 박성기 목사
는, 헌법에 명시된 “모든 국민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근거를 들어서 판사
에게 강하게 항변하였으나 결국 퇴교명령이 내려졌고, 학생들은 다시 그 학교마저도 퇴교
하게 되었다. 이 때가 이듬해 1974년 7월이었다. 사건 발생 2년 뒤 1975년 9월 25일 대
구고등법원에서 최종 패소판결이 남으로써 이 사건은 종결되었다. 이때 사건을 맡은 김광
일 변호사의 변론은 무려 28페이지나 되는 많은 분량이지만 간단히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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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온 50년의 발자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