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8 - 김해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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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주는지 두고 보겠다”는 등 기독교를 비방하는 말들을 하였다. 당시 교장인 윤대화 씨는
                쉰 초반의 젊고 자신만만한 초임발령을 받은 교장으로, 자신의 눈앞에 비친 학생들의 이러
                한  행동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교장의 말과 행동을 전해들은 모 목사님은 다음 날 학교를 방문해 “교장 모가지가 얼마
                나  두꺼운지  보자”라고  심각한  표현을  해  학교와  교계는  감정대립으로  치닫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전국의 모든 일간지는 이 내용을 1면 톱기사로 다루었다. 이러한 사실이 보
                도되자  사회  일각에서는  불온사상에  물든  공산주의자들이  아닌가  하는  사상적  의심마저
                하였다.  그  당시  강요된  애국심이  옳다고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상황  속에서  그런  의심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후  많은  교사들은  적발된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불러서  회유와  협박을  반복하였다.
                그것을 견디지 못하여 거부 학생 수는 22명으로 줄어들었다. 어떤 학생은 이러한 과정에서
                국기경례를 하겠다고 담임과 약속한 후, 집에 돌아와서 신앙양심에 대한 가책과 친구들을
                배반했다는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국기경례  절대  거부’라는  혈서까지  써서
                학교에  제출하는  등  학생들은  매우  심각한  행동까지  하게  되었다.  학교  당국은  게시판에
                22명의 명단을  적어 ‘제적공고’를  붙인 다음,  국기에 대한  경례를 수용하겠다는  학생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씩 지워 나갔다. 그리고 예수를 믿지 않는 학부형을 학교로 불러서, 학부모
                앞에서 국기경례를 하겠다는 서약서에 도장을 찍게 하는 등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하였다.
                  당시  국기에  대한  경례를  끝까지  거부했던  학생들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괴로움을  겪었
                다. 학교생활에서의 핍박과 회유, 갈등과 번민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지역 사회와 교회에
                서까지도 의견 대립으로, 어린 학생들로서 그러한 현실을 감당하기는 너무나 힘이 들었다.
                이들은 이 문제를 신앙으로 이기기 위해서, 날마다 방과 후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김해중
                앙교회로  달려가서  서로를  격려하며  하나님께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울부
                짖고  매달리며  기도했다.  서약서에  도장을  찍은  학생과  안  찍은  학생을  이간하여  한  명이
                라도  더  서약서에  도장을  찍게  하려는  학교당국에  대해  학생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위로
                격려함으로 이에 대응했다.
                  학교당국에서는  학생수가  7명으로까지  줄어드니,  다른  학교로  전학가는  방법을  대안으
                로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상황으로는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학생들을 받아 주겠다는 학
                교가 없었다. 그런데 부산에 있는 기독교 사립학교인 브니엘고등학교가 이들의 전학을 허
                락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가정 형편상 학부모로서는 부산에 있는 사립고로 전학하는 문제
                는 상당한 부담이 되었다. 그 중 한 명이었던 박복숙(2년, 김해중앙교회)은 그가 소속된 교
                회에서  전학에  필요한  비용을  모두  부담하고,  학부모가  이를  받아들여  브니엘고등학교로
                전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데
                ‘우리가  그  희생자가  되자’고  6명은  결의했다.
                  학교당국은  사건  발생  13일  만인  1973년  10월  1일  끝까지  경례를  거부한  6명을  교칙
                제30조(교사의 지도에 불응함)를  적용하여 제적처리했다. 제적된  학생들의 명단은 다음과





         188     김해중앙교회  70년사(은혜와  축복으로  달려온  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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