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1 - 김해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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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일치의 총화체제로 지향해 나가는 마당에 국민 분열을 초래할 지도 모르는 위험한 처사는 시
정되어야 할 것이다.
3. 원고들은 그들의 종교 지도자들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한 것이므로 그 가르침인 국기경례 거부가
적법한 것이냐의 여부는 그들과는 좀더 높은 차원에서 종교 지도자들간, 정부 지도자나 입법자
들간에서 모색 해결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고 원고들을 그 희생물로 삼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사건은 한국교회사에서 아주 중대한 문제였다. 즉,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 하나님의
말씀과 그 실천문제가 미해결의 과제로 남게 된 때문이다.
그 후 3학년 류영화는 고신대학에 특례 입학한 후 서울 향상교회 정주채 목사의 사모가
되었다. 또한 박명순은 검정고시로 대학에 진학한 후 부산 브니엘고등학교 교사로 있으며,
이화영은 김해 양무리교회 집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다(증언: 박명순).
20. 중앙농장
‘중앙농장’은 우리 교회가 1971년에 제2 예배당을 건축하고 1977년 교회의 부채를 갚
은 후, 주차장을 만들고 교회 정문 앞에 가건물로 지은 점포 3칸을 헐어 안이 보이는 담장
을 하는 등 교회가 질적, 양적으로 불같이 부흥하던 때에 이루어진 것으로, 교회는 선교·
장학문제를 생각하고 나아가서 한국 농어촌 교회에 비전을 제시하고자 양계사업을 하기로
하였다.
삼계동에 500여 평의 농장부지를 매입하였으나 소규모여서 그것을 팔아 7월에 외동
1035-4번지 외 9필지의 밭 1,102평, 논 2,972평, 임야 4,230평, 총 8,304평을 1,300만
원에 매입하고 축사 2동 240평과 관리사 1동 30평을 허가까지 포함해서 매입하였다.
21. 임직
1) 당회원 증원
교세가 신장됨에 따라 당회원 증원의 필요성이 있어 1971년 11월 22일에 김학률, 김진
희 두 장로의 장립식을 거행하였고, 두 해가 지나서 공병학교 중령으로 복무하던 문찬국
집사를 1973년 6월 6일에 장립함으로서 장로 당회원은 5명이 되었다.
2) 집사 장립
1975년 12월 14일에 안봉래, 박찬수, 강천수, 채무남 집사 장립과, 1976년 11월 14일
에 박직현, 김영기, 박상진, 박영효 집사 장립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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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온 50년의 발자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