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2 - 김해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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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속되었으며  200여  교회가  문을  닫게  되었다.
                  계속되는  일제의  박해에  견디지  못한  성도들은  해외로  암혈토굴로  몸을  숨기게  되었고
                평양신학교를 위시하여, 평양숭실전문학교, 정신, 연희전문, 세브란스의전 등 많은 학교들
                이 폐쇄되고 1942년 9월에는 외국 선교사들이 떠나게 되면서 그들이 운영하던 기독교 학
                교들도  문을  닫게  되었다.




                3.  출옥  성도들의  교회  개혁안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질곡의 역사가 오래가도록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 민족에게 해방
                을 주셨다. 투옥 성도들과 지하에 숨어 지내던 성도들이 돌아오고 교회재건의 움직임이 일
                기  시작했다.  출옥  성도들은  1945년  3월  20일에  평양  장대현교회에  모여  교회개혁안을
                제시하였다.



















                               출옥한  옛  선배들의  모습


                 1.  교회의  지도자들은  모두  신사참배를  하였으니  권징의  길을  취하여  통회  정화한  후  교역에  나설  것,
                 2.  권징은  자책이나  자숙으로  하되,  목사는  최소한  2개월간  통회  자복할  것,
                 3.  목사와  장로의  휴직  중에는  집사나  평신도가  예배를  인도할  것,
                 4.  교회  재건의  기본원칙을  전국에  시달하여  일제히  실행케  할  것,
                 5.  교역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를  복구  재건할  것,”  7)

                  이 개혁안이 발표되자 홍택기 목사를 위시한 친일자들은 “해외로 도피한 사람이나 교회
                를 지키기 위하여 나섰던 사람이나 그 고생은 마찬가지였다.”, “신사참배 회개의 문제는 각
                인이 하나님과의 직접관계에서 해결될 성질의 것”이라며, 저들이 신사참배를 주도한 것도
                교회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고,  회개는  각자의  양심에  맡겨야  한다고  항변하기  시작했다.





                7)   50년사  129페이지  참조



         142     김해중앙교회  70년사(은혜와  축복으로  달려온  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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