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1 - 김해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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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목사를 청빙하는데 도와준다면 탈퇴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는
데, 그 교회가 원하는 목사가 바로 이선 목사였다.
누문교회에 부임하여 제일 먼저 한 일은 교회 이미지를 새롭게 하기 위하여 교회 이름
을 ‘은광(恩光)교회’로 바꾸고 전도에 주력한 일이었다. 그 당시의 교인 수는 약 70명 정도
였는데 또 한 가지 어려운 조건은 인근에 합동 측 교회인 ‘중앙교회’라는(1970년대 당시만
해도 4~500명이 모이는) 큰 교회가 있어, 은광교회가 성장하는 데 어려운 점이 있었다.
교단이 다르니 열심히 전도하면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리라 믿고 기도하고 전도하는 일에
전념하기 시작한 지 1년 후부터 교인이 불어나기 시작하여 은광교회 사역 13년 만에
(1983년) 1,000여 명 성도가 모이는 큰 교회로 성장하여 우리 교단과 그 지역 다른 교단
에까지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성공적인 목회를 하게 된 것은 첫째는 전도였고, 둘째는 설교라 할 수 있다.
그 당시 이목사의 설교는 문화방송과 기독교방송, 그리고 광주 문화TV방송을 통해 전해
졌고, 본 교회 교인들이 매주일 예배시간에 부흥회를 하는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은혜가 되
었으며, 당시에 교단은 달랐지만 근처에 있는 광주신학교 학생들이 수요예배에 참석하곤
하여 말썽이 되기도 하였다 한다.
이선 목사가 설교를 준비할 때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이 말씀을 과연 하나님께서는 이런
뜻으로 말씀하셨을까? 혹 하나님의 뜻을 내 마음대로 아전인수격으로 설명하고 있지는 않
는가?” 그리고 “항상 나는 이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였다. 그리고 “이 말씀이 교인들에게
필요한가? 또 지킬 수 있는 말씀인가?” 이런 관점에서 많은 시간을 들여 연구하고 묵상한
다. 교인들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갈 때 설교를 잘 한다는 말보다는 “하나님은 참 위대한 분
이다”, “예수님이 얼마나 감사한 분인가?” 라는 고백을 하고 돌아가는 것을 보기를 원한다.
이선 목사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 추진하는 목회 스타일을 갖고 있다. 교회 행정은 말할
것도 없고 설교 준비도 1년치 주제와 본문 성경을 미리 정하고 한 달 전에 그 다음달 제목
을 대충 메모해 놓고 일주일 동안 묵상하며 금요일이면 기도원에서 기도로 준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셋째는 이선 목사의 인격과 삶을 들 수 있다. 설교와 생활의 일치를 위해 노력하며 선한
인상과 특히 예수님처럼 어린이를 사랑하는 목자로서의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
향을 주었다.
넷째는 오정인 사모의 충실한 내조를 빼놓을 수 없다. 항상 밝고 긍정적인 인품에 친화
력이 돋보이는 오사모는 이목사의 설교에도 일조(一助)를 하였는데 설교 구상을 이야기하
며 오사모의 충고와 조언을 듣고 하는 설교는 교인들에게 감화를 주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 후 이선 목사는 13년간 봉직하던 은광교회를 사임하고, 200여 명이 모이는 서울 왕
십리 제일교회로 옮기게 되었는데 무슨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에서 얻은
결론이었다. 교회가 성장하고 유명해지니 혹시나 교만하여 마치 모세가 “반석을 가리키라”
는 하나님 말씀에 반석을 “쳐서” 생수를 나게 하는 그런 망령된 일이 나에게는 없을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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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온 50년의 발자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