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7 - 김해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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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라〉라는 책을 내고 이를 약해서 ‘다미선교회’라 명명한 후, 1992년에 예수의 공중재
림과 성도들의 휴거가 있을 것이며, 1999년에는 예수의 지상재림이 있게 되고, 성도들의
휴거가 있은 후 7년 대환난이 있게 되는데 그 환난의 때가 임박했으므로 준비를 해야 한다
고 주장하였다. 이후 걸프전이 터지면서 이 시한부종말론은 더욱 극성스러워졌고, 신도들
의 가출, 직장포기, 학생들의 학업중단, 임신중절, 군무이탈 등 극심한 사회혼란을 야기하
였다.
우리 교회에서도 장로 1인을 비롯한 여러 가정이 미혹을 받았다. 그들은 당회의 수차례
의 권면에도 불구하고 다미선교회 집회를 인도하는 등 이에 적극 가담할 뿐 아니라 이를
주도하고 있었으므로 권징 조례 제1장 제2조 제1, 2항과 제3조, 제6장 제41조에 의해
1991년 12월 31일 시무정지되고, 그 후 교회출석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계속 이 단체의
활동을 하고 있음으로 제명되었다.
드디어 1992년 10월 28일 0시. 전국의 언론과 TV가 생중계를 하는 가운데 다미선교회
회원들은 흰 옷을 입고 열광적인 기도를 하면서 휴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
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는 마태복음 24장 36절 말
씀이 진리임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그들의 주장이 거짓으로 끝나자 다미선교회는 종단해
체를 선언하고 대국민사과성명을 발표하였다. 교주 이장림은 신도들의 재산 34억여 원을
헌납받아 가로챈 혐의로 서울지방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10. 기도운동과 부흥회
1) 기도운동
1986년 5월 11일부터 한 주간 「오순절 성령체험 능력체험 특별기도회」를 매일 새벽과
저녁에 열었고, 1987년 다락방기도운동을 전개하며 120명 참여를 목표로 하였다. 1988
년 7월 7일부터 8월 15일까지 40일 「제2차 새벽기도 헌신운동」을 전개하고 불신가족 구
원, 교회 4대 실천목표, 우리 교단 발전과 한국 교회 부흥, 88 서울 복음화대회와 서울올
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11월 21일부터 12월 30일까지 「40일 단기 새벽기도학교」를 개교하고 전 제직들은 의
무적으로 참석케 하였으며 마칠 때에는 수료식을 거행하였다.
1989년 8월 21일부터 9월 29일까지 「제2차 40일 새벽기도 운동」을 전개하고 불신가
족 전원구원, 성령충만, 국가와 민족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였다.
1990년 5월 25일부터 6월 3일까지 「오순절 성령체험 합심기도 운동」을 전개하고 매일
새벽 성전에 나와 기도하고 가정예배, 구역예배, 기타 공예배 때마다 집중기도하였으며,
성령에 관한 성경을 읽고 금요일 밤은 총동원 철야기도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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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온 50년의 발자취